2024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작 「뱀파이어의 취업 준비」
환한 낮은 위험하다.
적어도 언니에게는 그렇다. 으슥한 길목이나, 인적 드문 산책로에서 언니는 안식을 느낀다. 사람이 많든 적든 간에, 언니는 주위를 살필 수밖에 없는 어둠 속을 좋아한다. 함부로 속도를 높여 뛰거나 달리지 않고 조심하는 발들을 지켜본다. 뱀파이어가 따로 없다. 그래서 우리의 약속 시간은 항상 저녁 어스름이다. 너무 저녁에 헤어질 수는 없으므로, 해가 질 즈음 나와 완전히 질 때 신나게 놀고, 깜깜해지면 집으로 돌아간다. 내 핸드폰에 언니는 뱀파이어라고 저장되어 있었다. 그런데 전장연 시위가 한창일 때, 30분가량 멈춘 지하철 안에서 언니는, “또 장애인들이 일반인 피를 말리네.” 그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 말을 내게 전한 날에 나는 얼른 언니 저장명을 바꾸려고 핸드폰을 꺼냈지만, 언니는 됐다며 피식 웃었다.
언니는 성인이 된 이후에 소리를 잃었다. 언니의 소리는 물속에 풍덩 빠진 것처럼 먹먹해졌다가 물 위로 올라오지 못했다. 돌발성 난청이었다. 듣지 못하면 말하기도 어려워진다는 걸 언니를 보고 처음 알았다.
오늘도 언니는 헤드폰을 끼고 왔다. 언니는 주변 기척을 잘 느끼지도 듣지도 못했다. 도보로 다니는 킥보드, 전동 자전거, 차, 뛰어오는 사람까지. 어느 순간부터 언니는 노이즈 캔슬링이 되는 헤드폰을 아무 노래도 틀지 않고, 노이즈 캔슬링도 켜지 않고 쓰고만 다녔다. 이걸 머리에 끼고 있으면 저 사람은 저걸 끼고 있어서 소리가 안 들리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알아서들 피한다고.
물론 그래도 일은 일어났다. 지난번 낮에는 골목을 걷고 있다가 뒤에서 울리는 경적에 놀라 주저앉았다고 했다. 차에 타고 있던 사람은 언니의 헤드폰을 가리키며 화를 쏟아내다가 언니가 청각 장애를 갖고 있다는 걸 들은 후에야 사과했다고 했다. 그러나 언니는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리고 다시 보지 않을 것 같은 사람에게까지 청각 장애가 있다는 걸 말하고 싶지 않아 했다. 그 송구스럽고 불편해지는 표정을 보고 있자면 숨이 턱 막혀온다고 언니는 말했다.
“또 떨어졌어. 면접도 못 갔는데 이번 거는.”
언니가 말했다. 나는 언니의 입가에 귀를 바짝 대고 있었다.
언니의 발음은 어눌하지만 선명하다. 따듯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내게는 그렇게 들린다. 언니는 취업 준비에 한창이었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교에 가뿐하게 현역으로 들어갔다. 긴 입시 끝에 겨우 학교에 들어간 나와는 달랐다. 그런데 갓 취업 전선에 들어온 나와 같이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언니는 작년, 경리로 일하던 회사를 그만뒀다.
“회사는 많으니까. 그리고 백수일 때가 제일 좋지 않아?”
나는 천천히 입 모양을 과하지 않게 벌리며 대답했다. 언니 귀에는 보청기가 꽂혀있다. 내가 너무 크게 말하거나, 너무 빠르게 말하지만 않으면 언니는 내 말을 들을 수 있다.
“그건, 그래.”
언니와는 만나고 싶지 않아도 제사 때, 명절 때가 되면 만나게 된다.
언니가 갑자기 청력을 잃고 난 후, 한동안은 만나지 못했다. 나는 명절마다, 제사마다 빠지지 않고 이모네 집에 방문했다. 그럴 때마다 언니는 집에 없었다. 아마 아주 깊은 물 속에서 뭍으로 올라오는 길을 잃었던 것 같다. 어떻게 수면 위로 올라왔는지는 묻지 않았다. 다만 언니를 꼭 안아주었다.
“그렇지만, 내가 봤을 때 언니의 문제는 그거야.”
“뭐? 내가 일반적이지도, 일반적이지 않지도 않다는 거?”
언니는 연이은 취업 낙방의 탓을 청력에게 돌렸다. 재택을 할 수 있는 직장에서는 주로 중증 장애를 가진 사람만 뽑았다. 그러니까 언니 말로는, 언니는 애매했다. 일반적인 것과 일반적이지 않은 것. 그 사이에 있는 사람이었다. 잘 들리지는 않지만, 아예 안 들리지는 않은. 말할 수 있지만 선명히 말할 수는 없는. 주류와 비주류, 그 사이 애매한 경계선에서 어느 쪽에도 제대로 포함되지 못하는 것.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언니의 고질적인 문제는 따로 있었다.
“언니 너무 희망 직종이 자주 바뀌잖아..!”
소리를 높이려다가 간신히 낮추었다. 언니의 직종은 처음에는 경리였고 이제는 사서로 바뀌었다. 사실은 나도 알았다. 언니의 희망 직종이 왜 계속 바뀌는지. 언니는 세상에 언니 자신을 맞추려고 했다. 언니 목에 걸린 헤드폰처럼. 밖에 여섯 시가 되어야 마음 편히 나오게 된 언니의 시간처럼 말이다. 밥을 먹고 언니를 집에 보낼 때까지도 언니의 마지막 말에 선뜻 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언니, 다음부터 아침에 만나.”
“갑자기?”
“언니가 피하려는 게 사람이면 피하지 말자고. 이런 말 웃긴데, 뱀파이어, 그것도 어쨌든 사람이잖아.”
나는 언니의 목에 걸린 헤드폰을 슬쩍 들었다. 쓰지도 않을 거라 저렴한 거 샀다더니, 그래서 그런지 꽤나 무거웠다. 언니는 내 말에 별다른 대꾸 없이 버스를 타버렸지만, 다음 약속을 당연하다는 듯 오전 시간으로 잡았다.
그게. 해가 뜨는 이른 아침이었지만.
취준생도 건강을 챙겨야 한다며 한강을 뛰기로 했다. 내가 만나자고 한 거였지만 졸린 눈을 비비며 버스정류장에 앉아 언니를 기다렸다. 언니가 탄 버스도 머지 않아 도착했다. 그리고 머리를 깔쌈하게 묶은 언니가 빛을 받으며 버스에서 내렸다. 목에는 어떤 것도 걸려있지 않았다. 눈이 부셔 역광이라 눈을 작게 떠야 했지만, 언니만은 선명히 보였다. 우리는 눈이 마주치자 뭐라 말할 새도 없이 이른 아침부터 이러고 있는 게 웃겨서 오래 마주보고 웃었다.
“뭐가 웃겨”
나도 내가 왜 웃는지 모르면서 언니에게 물었다. 그러자 언니는 대답했다.
“너무 환해서. 너무 밝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