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022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 나는 엄마가 흘린 땀방울을 줍는다

수상연도 2022
수상유형 최우수상
내용 나는 궁금한 게 있으면 엄마를 찾는다. 네이버도 책도 교수님도 좋지만, 역시 내가 만족하는 대답은 늘 엄마 입에서 나온다. 전생은 무엇일까, 또 뜬구름 잡는 고민을 하다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전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나한테 전생이 있었고, 그게 현생에 영향을 준다면 내가 전생에 대해 좀 알아야 하는 거 아냐? 왜 알 수가 없는 거야! 내가 걔 때문에 지금 고생하며 사는데……”
“그거 다 알면 억울해서 못 살아. 내가 말했지? 전생이 어땠는지 알지는 못해도, 그게 있다고 가정해야 지금 열심히 살 수 있다고. 전생이란 건 없고, 다시 태어나지도 못한다고 하면 누가 열심히 살겠어?”
“하긴, 그건 그래……. 그래도 궁금하잖아. 전생에 내가 덕을 쌓았는지 안 쌓았는지! 나중에 로또 될 건지 말 건지. 크크크”
“아이고~ 따님아 요행을 바라지 마셔~ 나는 전생에 뭘 잘못했길래 이러고 사냐. 엉! 반드시 ‘쭈니’가 엄마를 살리든가 구해주든가 했을 거야. 그러니까 내가 걔한테 빌빌 기고 살지.”

‘쭈니’는 우리 집의 막내 남동생을 부르는 애칭이다. 전생에 엄마를 구하느라고 힘을 다 쓴 ‘쭈니’는 미토콘드리아 근병증이라는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다. 1급 장애, 무호흡증 경기, 의사소통 불가. 동생을 소개하는 가혹한 단어들이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간지러운 곳 긁기(아주 서툴고 힘 조절이 안 되지만), 뒤집기, 옹알이하기, 눈 비비기, 손깍지(엉망진창으로 쥔다), 배변 활동 정도다. 그러니까, 몸만 큰 아기다. 

엄마는 전생에 ‘쭈니’가 반드시 장군이었을 거라고 한다. 그리고 자기는 ‘쭈니’ 장군에게 목숨을 구했을 거라고. 그래서 받들고 살아야 한다고. 한 무속인이 장군이었던 사람은 남을 많이 해쳤으므로 다음 생에 장애를 갖고 태어난다고 했다. 그럴싸해 보이는 말이지만, 나는 이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픈 동생을 키우는 엄마가 삶에 당위성을 부여하려고 믿는 말 같아서다. 

엄마의 일과는 동생에게 달렸다. 동생이 일어나면 엄마의 하루도 시작한다. 기저귀부터 확인 하고, 물이나 두유 등을 먹이고 아침 약을 먹인다. 중간에 밥을 먹이고 또 단백질 음료를 먹이고 중간중간 기저귀도 간다. 8시간 기간을 두고 저녁 약도 먹인다. 기저귀가 넘쳐 이불에 새면 수건을 깔고 옷을 갈아입힌다. 여기까지가 우리 삶의 일부다. 동생과 생활을 한 문단으로 정리하기란 너무 어렵다. 확실한 건 동생의 일과 사이사이에 반드시 엄마가 함께 있다는 거다. 

엄마는 최근 허리 디스크로 고생했다. 원래 일자목인데다 디스크까지 겹쳐 잠도 편히 못 자고, 물리치료를 받고, 스테로이드제 약도 먹었다. 손목과 어깨 통증이야 중학생만 한 남자아이를 드느라 늘 달고 살았던 고통이지만, 허리 통증이 이리 오래간 적은 처음이라 며칠 동생을 잘 돌보지 못했다. 나는 이참에 쉬라고 했지만, 엄마는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새벽에 동생이 깨면 엄마 혼자 동생을 들어 올렸다. 아침에 일하러 가야 하는 아빠를 깨우지 않았고, 자는 오빠와 나도 깨우지 않았다. 이 미련한 엄마를 어찌해야 하나, 가끔은 답답함이 밀려온다. 


엄마는 도를 닦는 사람 같다. 동생은 커 가면서 점점 무거워지고, 자신만의 고집이 생겨서 돌보기가 더 까다로워졌다. 예전에는 누워 있는 동생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뒤집으려 하면 금방 돌았다. 그런데 요즘은 자기가 돌고 싶지 않으면 절대 돌릴 수 없게 힘을 준다. 힘이 어찌나 센지 강제로 돌릴 수가 없다. 이 고집이 오래가면 약 시간은 놓치고, 엄마가 잘 수 있는 시간은 더 미뤄진다.

엄마한테 “강제로 같이 돌릴까?” 물어보면 안 된다고 한다.
“ ‘쭈니’ 원하는 대로 하게 내버려 둬.” 한다.
‘그럼 엄마는? 엄마는 왜 원하는 대로 못 하고 그렇게 살아?’ 하고 싶은 말은 있지만 하지 않는다. 몸은 힘들어도 행복하게 동생을 돌보는 엄마에게서 그 보람을 뺏고 싶지 않아서다. 내가 그걸 뺏을 자격도 없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돕는다. 엄마가 삶을 대하고, 아픈 아들을 대하는 그 태도를 배우면서. 이 귀한 것을 공짜로 배우는데 내가 무슨 할 말이 있나. 엄마가 자면 불을 꺼주고, 심부름하고, 동생을 함께 돌보며 사는 거다. 

전국에 각기 다른 모양으로 희생하며 살아가는 분들이 있다. 엄마와 나는 <세상에 이런 일이>를 즐겨 본다. 내가 보기엔 엄마가 더 힘들어 보이는데도 엄마는 티브이 속 누군가를 걱정한다. 엄마는 사연을 들으면서 내게 말해준다. 콧줄 관리가 왜 힘든지, 병원 장비를 집에 들이는 게 얼마나 비싼지, 저 병은 진행이 어떻게 되는지 등을 말이다. 나는 열심히 반응하며 엄마 말을 듣는다. 그렇게 수업을 듣고 나면 동생을 더 챙겨주고 싶고, 나가서 만나는 어떤 아픈 이들이라도 돕고 싶다. 
엄마는 본인의 말이 딸을 얼마나 성장시키는지 모를 것이다. 엄마에겐 그냥 일상이고 당연한 지식이니까. 엄마가 딸과 대화하는 게 당연하니까. 

‘쭈니’는 한국에서 미토콘드리아 근병증이라는 병을 진단받은 세 번째 사람이었다. 그만큼 정보도 없는 병이었지만, 엄마는 좌절하지 않았다. 같은 병이라도 양상이 다 다른데, 동생처럼 잘 큰 아이는 매우 드물다고 한다. 동생은 크는 동안 수술 한번 한 적이 없었다. 경기가 멈추지 않거나 폐렴이 악화해서 중환자실에 몇 번 들락날락했어도, 언제나처럼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동생도 온 힘을 다해 회복했겠지만, 나는 엄마의 힘이 강하게 작용했을 거라고 믿는다. 

마음보다 강한 힘이 어딨을까. 의사소통보다 중요한 게 마음임을 엄마와 동생을 보며 알았다. 문득 ‘내가 정말 대단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어깨가 으쓱해지고 웃음이 난다. 

나는 어디 가서도 꿀리지 않을 힘이 있다. 혼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쭈니’도 힘내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고, 그러니 나는 지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동생과 엄마의 삶을 보면서 배울 수 있는 내 삶이 좋다. 우여곡절이 늘 있고 동생이 사라질까 봐 나날을 울며 걱정하던 때도 있었지만, 내 옆에서 까르르 거리는 동생 웃음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오늘을 열심히 살아내면 된다는 엄마의 말은 내게 큰 힘이 된다. 그 하루들이 모여 인생이 된다. 오늘을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박수받아야 할 사람이 우리 곁에 참 많다.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다.